지리산 청학동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. | |||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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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 | 임헌표(전기/8) | 작성일 | 2010.04.01 17:49 | 조회수 | 2,180 |
2010년 3월 27일.
지리산 청학골에 갔습니다.
도인촌이라는곳.....
우리나라에서 제일로 산골 벽지라고 하는곳.
막상 들어가니 그리 산골도 아니었습니다.
그곳에 머무는 이틀간을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훈장님과 한컷 했습니다.
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~
[훈장님 나랑 사진한방 박으시지요.]
그러면서 훈장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.
훈장님답게 답이 그러했다.
[예... 그러시지요....]
얼굴엔 ~~~ 언제나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.
친 형제에게 대하듯..... 그리 깊은 정성을 주었습니다.
도[道]를 논[論]하고 의[義]를 설[說]하는 청학강당.
그 입구엔,
[푸른구름이 상서를 주고]
[학들이 날라와서 자태를 선보이네]
[하늘에 도를 강의하여 밝히니]
[이 집안이 곧 신선의 고을이어라]
그리 되어 있었습니다.
그집 주인인 훈장님은 차 한잔하고 갈것을 권 하셨습니다.
고맙게... 그 뜻을 받았습니다.
[한국기인열전선술편]을 인용하면,
어느날 남추가 편지 한장을 써서 종에게 주며
[네가 곧 지리산 창학동으로가면 거기 반드시 두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을터이니 이 편지를 전하고 답장을 받아오너라.] 하고 일렀다.
종이 주인의 말대로 청학동을 찾아가니 과연 그곳에 한 노인이 노승과 더불어 대국을 하고 있어 그 노인에게 편지를 올렸다.
노인은 편지를 다 보고 나서 "네가 올 줄 알고 있었느니라" 하고 웃으면서 말한 다음에 답서를 쓰더니 푸른 구슬로 된 바둑을 하나를 답서와 함께 종에게 주었다.
그런데, 남추가 죽은 후에 그 바둑알도 없어지고 말았으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청학동의 그 노인을 고운 최 치원이라고 하고 노승을 금원선사라고 하였다.
지금 그 내용을 연출하는중입니다.
저 - 색시는 그걸 모를겝니다.
저 연출은 내가 부탁한것이 아니고 ~ 자칭 [사진작가] 라는 사람이
각본을 하고 그 일행인 저 여성이 연출하는 자리였습니다.
그래서..[음 ~~ 남추에 전설을 아는구나..] 하고 생각했습니다.
여러 훈장님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냈다.
저녁에 숙소를 찿아온 젊은 훈장님은 [삼지구엽초 약주]를 들고왔다.
음력 2월 중순[12일]..
달은 중천에 떠오르고 ~
나이든 훈장님은 너털웃음을 연달아 내시고~
젊은 훈장은 수줍음을 다 씻어내지 못한 웃음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.
마음속으로 몇번이고 그랬다.
[나 이렇게 살고싶다]........고........
어짜피 한번왔다 가는 인생인데 그리살아보면 좋겠다고....
현실은 어찌할수 없었지만,
잠시나마......
도심에 냄새를 씻을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.
위 사진 내용은 이러합니다.
천제단에 들려 노훈장님께 1배에 예를 올렸습니다.
훈장님도 벌떡 일어나셔서 답례를 하셨습니다.
그리고는 제가 정중하게 청을 올렸습니다.
[ 노 훈장님.. 좋은말씀 하나 얻어갈수 있겠는지요...?.. ] 그랫더니,
[네에... 그러시지요. ] 하면서 자리를 펴시고 ~
그 모습을 바라보던 관람객들이 하나, 둘 모여앉아 강의를 들었습니다.
그날에 강의는그리 시작되었습니다.
한흥교(전기/16) | 2010-04-02 09:12:18 | |
다음엔 같이가요 | ||
임헌표(전기/8) | 2010-04-02 18:40:36 | |
같이가면 나야 좋지요..... | ||
김희곤(전기/16) | 2010-04-02 08:28:08 | |
형님도 거의 청학동 주민같습니다 옷만 바꿔입으면..... 그만큼 때가 안묻은 형님이 좋습니다..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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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헌표(전기/8) | 2010-04-02 18:42:11 | |
부처눈에는 부처만 보인다잖우... 희곤씨가 맘이 고우니 모두가 그리 좋게보이는것 같습니다. |